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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대 중반 아시아와 중남미 시장이 성장하고 미국 국내의 경기가 살아나면서 항공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보잉의 경우 1996년 754대의 항공기 제작 주문을 받았는데, 1990년대 들어 가장 많은 주문이었다. 754대는 1994년의 124대에 비하면 무려 6배가 넘는 수치였다. 보잉은 다시 한 번 도약할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듯 보였다. 그런데 이 좋은 상황에서 보잉은 50년 만에 처음으로 손실을 기록하게 된다.
보잉은 1990년대 초반 경기침체로 인해 직원들을 대규모로 해고했다. 당시 보잉은 명예퇴직 대상자 1만 3,000명을 대상으로 퇴직신청을 받았는데, 이 중 9천 명이 퇴직을 신청했다. 이 수치는 보잉이 예상했던 인원의 두 배나 되는 것이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퇴직자들 중에 항공기 제작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숙련 기술자들과 유능한 간부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보잉은 유능한 직원들을 붙잡아야 했다. 그러나 경기 침체로 매출과 수익 감소에 시달리던 보잉은 유능한 인력을 내보내는 결정을 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결정은 도약하려는 보잉의 발목을 잡았고, 경쟁사인 에어버스(Airbus Industries)에게 추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보잉이 명예퇴직 형식으로 유능한 인력을 내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세계적으로 해외여행이 급격히 증가하고 미국 시장이 살아나면서 항공 시장은 최고의 호황기를 맞이했다. 보잉은 1996년 여러 항공사로부터 기록적인 항공기 제작 주문을 수주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항공기를 생산할 인력이 부족한 것이었다. 당시 보잉은 주문량을 조절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보잉은 6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경쟁자인 에어버스의 성장을 막기 위해 고객들에게 무리한 항공기 생산인도 약속을 남발했다.
생산인력 부족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보잉은 18개월에 걸쳐서 3만2천 명의 인력을 새…
참고문헌
피말리는 마케팅 전쟁 이야기(Marketing Mistakes and Successes, 2004), 로버트 F. 하틀리(Robert F. Hartl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