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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루는 물시계로서 세종 16년인 1434년 장영실에 의해 고안돼 경복궁 보루각에 설치돼 실제 사용됐다. 잠깐 사용이 중지되기도 했으니 1536년에 새로운 자격루가 완성돼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자격루는 물을 넣은 항아리의 한쪽에 구멍을 뚫어 물이 흘러나오게 하고, 그것을 받는 그릇에 시각을 새겨 넣은 잣대를 띄워 그 잣대가 떠오르는 것으로써 시각을 알게 되어 있다. 그래서 맑은 날과 낮에만 쓸 수 있고 흐린 날과 밤에는 쓸모없는 해시계보다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삼국사기>> 에는 신라 성덕왕 17년(718)에 처음으로 누각을 만들고, 이를 관리하는 기관으로 누각전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시대의 누각은 시(時)와 오경을 알아내는 정도의 원시적인 것이었으나 고려 조선을 거쳐 개량 발전되면서 시계로서의 기능을 유감 없이 발휘하게 되었다. 조선이 건국되고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후에는 새로운 표준시계가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그 요규에 따라 1398년(태조 7) 5월 종로에 종루가 세워지고 rtudfn가 설치되었다.조선시대에 최초로 제작된 누각인 경루는 고려 말에 사용된 부루 또는 부전과 같은 유입형 물시계였을 것이며, 16년 원나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두자성이나 세운행과 같은 유형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이 물시계에 의하여 사진이라는 서운관 관리가 종루에 걸어 놓은 대종을 쳐서 경점을 알렸다. 당종법은 초경에는 28수의 수에 따라 28회를 울렸고, 오경에는 33천(天)에 따라 33회를 울렸는데, 전자를 ‘인경’이라 하여 이 시각에 성문을 닫았으며, 후자를 ‘바라’라 하여 성문을 여는 시각으로 삼았다. 1424년(세종 6) 5월에는 경복궁에 청동제 누각을 중국의 체제를 참고하여 주조하였다.
세종 때에는 이 밖에도 몇 가지 물시계가 제작되었는데, 세종 16년에 처음으로 자동시보 장치를 가진 물시계를 제작하였다. 이것은 세종의…
-보루각의 자격루
-흠경각의 자격루
에는 높은 대가 있고, 그 위의 시간을 맡은 한 사람이 붉은 옷을 갖추어 입고 산을 등지고 서 있으며, 또 세사람의 무사가 모두 갑옷과 투구를 갖추고 서서 각각 종,북,징을 치는 일을 담당한다.
한편, 12신이 산의 둘레에 각각 제자리에 엎드려 있는데, 12신 뒤에는 각각 구멍이 뚫려 있으나 닫혀 있다. 자시가 되면 서신뒤의 구멍이 저절로 열리고 옥녀가 시패를 들고 나오며 서신은 그 앞에서 일어난다. 다음에 옥녀는 들어가고 구멍도 저절로 서신은 엎드린다. 축시가 되면 우신이 같은 짓을 하고 동시에 옥녀도 시패를 들고 나왔다 들어간다. 이와같이 하여 인신,모시... 해시를 지나면 다시 자시부터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