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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리큐의 적절한 충언을 들었더라면 아마 히데요시는 자신의 사후 권력투쟁에서 참패하게 되는 자신의 아들과 충복들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 것이며 일본 내의 혼란한 정국을 좀 더 일찍 끝맺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무모한 행동임에는 당연하다.
또한 그의 허황된 욕심으로 비롯된 조선침략으로 인하여 죽게된 조선의 백성들의 목숨에 대해서도 죄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측은 고작 정권이 바뀐 정도, 그리고 15만의 군사 중 5만을 잃은 정도의 피해만 입게 되었지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당사자로서 아무래도 조선, 즉 한반도 지방의 백성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음은 부인할 수 없으며 아울러 사회적인 변화까지 초래하는 등 격변의 시기라는 결과물의 토대가 되기도 하였다.
중국측은 명->청 이라는 왕조교체라는 정치적 변화를 겪지만 이 역시 조선의 그것에 비해서는 피해라고 할 것도 없는 수준이다.
(조선 원군이라는 결과는 결과적으로 오랑캐인 여진족(후금-청))의 힘을 극복하지 못하고 중원을 내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과정으로 전개된다.)
임진왜란 후 기존에 조선시대의 발전 가능성을 소실시키는 고질적인 신분적인 질서가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하였으며 또한 사회적인 인식의 변화 시작은 임진왜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자 시도한 조선의 자구책으로 이해해도 크게 잘못된 점이 없을 것이며 이러한 시도가 결국 미약하나마 발전을 가져왔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전쟁(임진왜란)의 최후 승리자와 패배자를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이 3국 전부 피해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며 가장 큰 피해를 조선 측이 보긴 하였지만 일본군을 한반도에서 축출한 것은 결국 조선의 힘이었기 때문에 조선은 승리자도 패배자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상처뿐인 영광, 즉 막대한 손실을 본 승리라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