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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幕末에 정치·경제적으로 ‘일본과 아시아’라는 빠른 단계의 명백한 자기 인식이 있었다고 본다. 동아시아는 華夷秩序(夷狄->冊封->敎化), 朝貢體制의 국제 질서를 가지고 있었으며, 中華帝國이 문명의 중심으로써 中華思想과 王化思想이 주된 국제관계의 이념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德川幕府는 중국에 朝貢使를 보내지 않았으며, 신하의 예도 갖추지 않고 정식 國交도 가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華夷體制로부터 빨리 탈퇴한 듯 보인다. 이전의 信長과 秀吉의 대륙진출 야망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바다(남양)로 진출하여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여 빨리 세계관에 변화를 가졌던 것이다.
3代 將軍, 家光의 시대에는 비록 鎖國을 하고 국가가 무역을 통제하였지만 일본은 여전히 여러 곳을 통하여 정보와 洋書, 洋書漢譯本을 입수하였다. 그리고 德川體制는 朝鮮과 정식 외교관계를 체결하여 막부의 사절을 파견하고 朝鮮通信使를 받아들였는데, 이는 일본을 중심으로한 琉球와 조선을 포함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17~18C경에 수립하였음을 말해준다. 곧, 쇄국을 통한 지리적 활동범위는 한정되었으나 지적·정신적 인식범위는 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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