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그러나 당시 글라이스틴이 군부의 행동에 불만을 갖고 있었는지는 대단히 의심스러운 일이다. 특히 그는 5월 23일 롯데호텔에서 공화-신민-유정회 의원들과 오찬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물론 보도에는 그의 요청대로 익명인 `주한 미국 고위관리`라는 이름으로 나왔지 만),
미국은 5·17조치의 배경과 불가피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국민이 다소 `잘못된 길`을 걷더라도 정치인들은 설득해야 한다.
특전사가 형식적으로는 미국의 작전통제하에 있지 않다 하더라도 당시와 같은 상황에서 미국이 신군부세력의 직속부대라 할 수 있는 이 부대의 이동상황을 몰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이해가가지 않는 측면이 많다. 당시 학생들의 대규모 도심시위로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한미 양군은 5월 13일과 14일 양일에 걸쳐 연합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코프 제이드 8xxx`로 명명된 이 방공훈련에서는 가상 적기를 상대로 한 방공작전, 후방으로부터의 물자 및 병력 지원을 차단하는 차단훈련,실무장 투하훈련,공중정찰·탐색 및 구조 작전이 실시되었다고 한다. 주의를 기울인다면 이 훈련내용의 일부는 외부(=북한)의 침략뿐 아니라 내란의 경우에도 대비할 수 있는 훈련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당시 한미 양국의 고위관리 간에 어떤 `요담`이 오고갔으며 5·17조치 및 특전사의 광주 투입에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당시 양국 고위관리들의 분주한 행적을 보면 양국간에 긴밀한 협의가 있었을 것이란 추측은 가능하다.
미 국무성의 콜버트 아태담당 부 차관보와 리치 한국과장은 10일 현재 한국정세와 관련해 미대사관 관리들과 협의차 방한중이었다.또 위컴 사령관은 13일 국방부로 주영복 국방장관을 찾아가 한국내의 제반 사태에 대해 논의하고 다음날 `공적인 일`을 위해 미국으로 가서 한국 내의 사태에 관해 워싱턴 당국과 협의하였다. 5월 18일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22일에는 20사단의 광주 투입을 승인하고 있다.
한편 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