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문제집 한 귀퉁이에서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 선생님께 질문했을 때, 그 때 분명 나는 ‘폭동’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설명을 들었고, 거기에 대해서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하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그래서 막연히 나는 제주 4.3 사건을 여러 가지 대립된 평가를 받고 있는 폭동 정도의 지식으로 기억으로 있었다. 그런데 작년 겨울 내가 수능 때문에 한창 정신 없었던 10월 31일, 한겨레 신문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 차원에서 4.3 사건에 대해 사과를 표명했다는 기사를 읽고 다소 아찔한 기분이었다.
4.3 특별법이 제정되고, 정부가 이 법에 따라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4.3 진상규명위원회를 발족시키기도 한 만큼, 이 4.3 사건에 대한 관점이나 평가는 이제 하나로 굳어진 셈이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이 사건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과 대립해 하나의 쟁점이 되었고 나 역시 4.3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 기사를 검색하고, 책을 찾기 전에는 여기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으므로 꼭 한 번은 알아보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4.3 사건을 주제로 선택하게 되었다.
해방
1945년의 `8.15` 해방 직후 한반도에는 해방의 기쁨과 변혁의 열기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었다. 민중은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라는 중앙과 지방 수준에서의 정부를 조직해 나갔는데 이 정부는 극소수 민족반역자를 제외하고 양심적 민족주의자들까지도 광범위하게 포괄하고 있는 정부였다.
한편 노동자들은 일제 자본가가 도망함으로써 그 가동이 중단된 공장 및 생산설비를 접수하여 자 주적으로 관리해 나갔으며, 농민들 또한 자신들의 피와 땀이 어린 소출을 무위도식하는 지주에게 강제로 빼앗겨야 하는 소작료 납부를 거부하는 등 민족이 해방되고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건설해 나가고 있었다.
제주도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제주도의 도민은 1945년 9월 10일, 각 마을, 직장 단위에서 자주적으로 조직되고 있…
제주도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