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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동도와 서도 사이의 형제굴, 동도의 천장굴 등을 비롯한 해식동굴과 해식대 및 해식애가 발달하였다. 강한 해풍과 부족한 토양 탓에 바위 틈에 약간의 식물들이 자랄 뿐 한 그루의 나무도 없었으나 소나무와 동백나무를 옮겨 심어 지금은 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경비대가 상주하게 된 이후 바위 위에 터를 닦아 집을 짓고 간이선착장을 만들었으며, 여러 곳에서 수질이 좋은 용천(湧泉)이 발견되어 식수 문제도 해결되었다. 섬 주변은 한류와 난류가 교차함에 따라 많은 어족이 모여들어 어장으로서의 가치가 높으며, 1954년 8월에 건설한 등대가 있다. 바다제비·슴새·괭이갈매기 등 이곳에 모여드는 희귀조를 보호하기 위해 1982년 11월 천연기념물 제336호 독도 해조류(바다제비·슴새·괭이갈매기) 번식지로 지정하였다.
며칠 전 까지만해도 연일 독도 관련 문제 때문에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할 것 없이 전국이 들썩 거렸다. 주한 일본대사는 서울 한복판에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망언을 하였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1952년 1월부터 오늘까지 독도영유권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입장은 이것이 어디까지나 「논쟁」일 뿐이지 「영토분쟁」이 아니라는 확고한 입장이다. 반면에 일본정부는 이것을 논쟁보다 격상되고 실제적인 「영토분쟁」으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이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을 「논쟁」수준으로 처리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확고한 증거문헌들이 충분히 축적되어 있고, 이것이 역사적 진실을 잘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