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마치 한사군의 지배로 한국사가 시작되는 듯한 서술을 지양하고 기원 이전의 고조선, 부여, 삼한 등이 한국사의 시원을 이루는 것을 인정하고 백제와 신라의 건국연도가 기원 전후라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 중국 한사군의 영역은 평안도와 황해도 일부에 국한되었음을 명시해야 한다.
2. 일본(야마토정권)의 한반도 남부 지배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4~5세기 당시 일본열도는 국가 형성 과정 중에 있었으며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와 일본 열도의 여러 정치세력의 관계도 시기에 따라 매우 복합적이고 합종연횡의 과정을 거쳤다는 인식에 기반해야 한다.‘지배’,‘영향력’,‘발판’,‘거점’등의 용어는 당시의 ‘국제’관계를 설명하는데 어울리지 않는다.
3. 일부 교과서에서 보이는 ‘귀화인’이라는 용어는 도래인이나 한반도 이주민 등으로 수정하며 한반도에서 유래한 문화적 영향에 관해서는 중국 문화의 단순한 전달자에 그치는 것이 아닌, 백제나 고구려, 신라 등의 고유한 문화적 역량의 결과라는 점을 밝혀야 한다.
4. 중국왕조와 주변국과와의 관계를 이른바 책봉과 조공이라는 정치적 행위로만 설명할 것이 아니라 탈근대의 문화적, 경제적 계념에 의거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의 조공체제에서 내정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거의 없었다는 설명이 필요하다.
5. 발해의 역사적 위치는 매우 복합적이다. 영역적으로 고구려의 옛 영역이자 현재 중국의 동북지방에 해당하는 영토를 가졌고, 고구려 계승의식을 가졌을 뿐 아니라 고구려 유민과 다수의 말갈계 주민을 포괄하고 있었다. 당의 문화와 제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일본과의 교류 관계도 깊었으며 또한 독자적 문화를 발전시켰다. 발해의 그러한 독특한 성격을 정확히 기술하고 당시의 국제관계에 대한 균형있는 서술이 요망된4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