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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염병과 인크로저 운동의 여파로 부랑자와 실업자는 계속해서 증가되었으며, 1594~1597년의 계속된 흉작과 식민지로부터의 은의 대량유입에 따른 화폐가치의 하락으로 실업자와 부랑자는 더욱 늘어났으며 따라서 부랑자에 대한 법도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엘리자베스 여왕 39년에 공포된 1597년 개정법 “수용시설(convenient houses of habitation)`을 건립하는 것과 또한 시설수용자들 혹은 1명 이상으로 이루어진 가족들을 하나의 오두막이나 가옥에 수용하는 것도 합법화되었다. 이에 따라 구빈원(almshouse)은 구빈제도의 일부로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다.
이로써 구빈법의 특징은 완성되었고 이는 그 이후 300년 동안 거의 그대로 지속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 43년에 제정된 1601년 구빈법은 흔히 영국 구빈법 사에 있어서 그 발달의 최고봉이라고 일컬어지고 구빈법하게 되면 엘리자베스 구빈법만을 연상하는 것은 실제로는 과장된 평가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같이 엘리자베스의 구빈법이 제정되기까지 1349년부터 구빈법은 여러 형태로 재구성되고 개정되었다. 이러한 구빈법을 단순히 엘리자베스의 구빈법으로 일축시키는 것보다 그 이전의 발생배경부터 …
참고문헌
• 칼 드 슈바이니츠, 영국의 사회복지 발달사, 인간과 복지, 2001
• 김만두·한혜경, 현대사회복지 개론, 홍익제, 2000
• 함세남 외 공저, 선진국 사회복지 발달사, 홍익제, 1996
◦ http://my.dreamwiz.com/inok7090/cyber-lecture/disive-history.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