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철도산업구조개혁과정
(1) 1989년 철도구조개혁방안: 공사화 1989년에 「한국철도공사법」이 제정되기 까지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추진되었다. 1967년 12월 18일 아시아개발은행 2차차관협정에서 1969년까지 공사체제로 개편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후 1979년 11월 12일에 미국의 벡텔사는 철도경영개선용역보고서에 공사화를 건의하였다. 1980년 5월 21일 세계은행의 제7차차관협정에서 1987년 1월 1일이전에 철도공사화를 강구한다고 명시하였다. 그후 전두환대통령 당시인 1985년 2월 22일에 철도공사법안 검토를 지시하였다. 그후 노태우대통령의 선거공약으로 본 사항이 추진되었고, 1989년 11월 15일 국무회의의결을 거쳐 1989년 12월 11일 국회본회의에서 의결되었다.
정부는 1989년에 「한국철도공사법」을 마련하고 1993년에 철도공사를 출범시키기로 하였다. 당시의 경영상태를 보면 1989년말 현재 철도인력은 37,807명, 영업거리는 3,120.4㎞ 였다. 자산현황은 1989년말 현재 3조 7,604억원, 부채는 1조 6,023억원이었다. 경영수지는 1989년에 23억 5,800만원의 적자를 기록하였다. 정부지원금은 투자지원이 763억원, 경상지원이 589억원으로 경상지원과 경영수지를 적자를 합한다면 612.6억원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정부부처형공기업인 철도청을 공사화하여 공공성과 기업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공사형태로 전환하는 것을 결정하였다.
1993년 1월 1일부터 철도청의 공사출범을 위해 실무적인 작업추진을 위해 당시 교통부내에 철도공사기획단, 철도청내에 철도공사 설립위원회 사무국이 설치되었고, 교통부만으로 공사화추진에 어려움이 있어 1992년 4월 정부는 경제기획원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철도청공사화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공사를 추진하였다. 이와 함께 관계연구기관에서는 철도공사화추진방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공사화를 준비하였다 교통개발연구원의 철도공사화방안연구(1991-1992)등이 그것이…(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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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업의 경영개선조치를 포함시켰다. 정책추진에 있어 1996년으로의 철도공사화연기는 당시 최평욱 철도청장이 최각규 당시 경제기획원장관에 공사화에 따른 막대한 예산부담과 노조문제등을 들어 연기를 요청하고 정부는 이를 수용하였다. 1996년의 공사화를 백지화한 것은 당시 김인호 철도청장이 상하분리 등을 골자로 하는 특례법을 만들어 경영정상화이후 바로 민영화로 추진하는 정책을 수립하였고, 당시 한이헌 청와대 경제수석도 이에 대한 동의를 표시하였다 당시 김인호 철도청장은 경제기획원사무원으로 관료로 입각해, 경제기획원에서 과장, 국장, 차관보등을 역임하고, 한국소비자보호원장을 거쳐 청장에 입명되었다. 따라서 그간의 활동과 논리로 볼 때 시장원리에 입각한 민영화가 바람직한 안으로 보고 추진하였다. 청장이후의 활동도 공정거래위원장, 경제수석등을 거치면서 이러한 면은 나타난다. 참고로 저서를 보면 「경쟁이 꽃피는 경제」「시장으로의 귀환(1999년 11월)」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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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의 철도구조개혁과정에 있어서 재무상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92년도에 철도부채가 가장 많았지만 ‘93년도에 국내차입금이 대폭 감소한 것은 ‘93년 철도공사화 연기에 따른 ’92년말 까지의 재특채무 원금 1조 5,334억원을 ‘93, 1, 1일자로 정부일반회계에서 인수하였기 때문이다 연도별 부채현황추이(억원)
연도별
91년
92년
93년
94년
95년
96년
고정부채
-국내차입금
-외국차관
-철도채권
13,728
12,288
1,440
-
16,937
15,836
1,001
-
3,647
2,861
786
-
5,444
3,357
534
1,553
7,378
3,737
316
3,325
8,128
4,974
5
3,148
유동부채
-미지급금
-기타부채
-유동성장기부채
5,996
789
4,256
951
9,304
860
8,069
375
4,318
682
3,135
501
6,787
72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