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Ⅱ. 아관파천과 한-로 관계
1. 청일전쟁을 전후 한 한국과 열강
1894년 이후 아관파천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는 한국의 근대사에 있어서 대단ㄴ히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시기였다. 개항 이후 한국이 비록 독립국으로서 근대 외고 무대에 등장 할 수는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청과의 전통적인 사대외교를 한번에 청산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한국은 사실상 청과의 사대적 외교관계를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청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으나 그러한 주장을 노골적으로 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갖추지는 못하였으며, 청은 한국과 전통적인 사대외교를 근대적 외교관계로 전환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청은 청 나름대로 그들의 지배 하에 한국을 두고 싶어 했으며 이런 경향은 임오군란 이후에 더욱 가속화되어서 조선의 내정과 외교는 사실상 청의 간섭에 놓여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청일전쟁에서의 청의 패배는 한국에서의 청의 종주권의 묵시적 인정이라는 기반위에 성립하였던 동북아 질서를 어지럽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청이 한국에서 차지하였던 전통적인 조공제도에 기초한 위치는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고 청의 자리를 대신하여 일본이 한국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상황으로 발전하였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동북아에서의 중국의 헤게모니는 종말을 고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청일전쟁에서의 패배를 통하여 중국은 한국에 대하여 종주권을 주장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서양 문물을 초기에 받아들였던 일본은 중국을 제압하고 한국에서의 우위를 확보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은 서양의 열강들과 마찬가지로 이를 계기로 제국주의국가로의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북아에서의 일본의 부상은 무엇보다도 한국을 포함하여 만주 일대의 커다란 시장을 일본의 독점적인 영향 하에 둘 수 없다는 열강들의 …
국제정세의 이와 같은 변동에 따라 한국의 정치정세도 당연히 큰 변동을 보이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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