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존 러스킨은 런던의 부유한 포도주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캘빈주의자인 모친의 엄격하고 청교도적인 교육을 받고 한편 아버지에게서는 시와 미술에 대한 탁월한 감수성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감각적인 미를 죄악시하는 기독교적 도덕주의는 감각적인 미를 추구하는 그의 미적 감수성과 되풀이하여 갈등을 일으켰으며, 러스킨이 자연주의 미학으로 나아가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그는 신이 만든 자연의 미에는 도덕적인 죄의식을 갖지 않고 기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부친을 따라 유럽 여러 곳을 여행하여 미술과 문학에 대한 취미를 길렀고 그림을 배웠다. 부친의 넓은 문학적 취미와 낭만파 시인의 작품, 모친의 교육에서 성서를 접하면서 그의 문학적 경향이 굳어져갔다.
처음에는 목사가 되려고 하였으나, 옥스퍼드대학 재학 중에 이 뜻을 버리고, 졸업한 이듬해인 1843년 낭만파의 풍경화가인 J.터너를 변호하기 위하여 쓴 《근대 화가론》(5권, 1843∼1860)의 제1권을 익명으로 내어 예술미의 순수감상을 주장였는데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미술 비평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미술 특히 회화의 비평에 관심을 갖던 그는 건축과 디자인, 마침내는 사회비평으로 발전해간다. 그의 말년에는 미술비평가보다는 사회비평가로서 더 명성을 얻었지만 그가 살아가는 동안 가장 관심을 쏟았던 부분은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으며 그의 사회비평 역시 초기의 미학이론이 확대 발전된 결과이다.
러스킨이 미학에서 근대미학의 옹호자들이 가장 적대감을 느끼는 부분은 미에 대한 도덕주의적 해석이다. 러스킨의 이러한 태도는 미의 독자적인 가치를 탐구하는 근대미학의 태도와는 아주 상반된다. 러스킨은 기본적으로 예술이 인간의 다른 삶의 영역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견해를 일생동안 유지한다. 그리고 미술은 인간의 사회적, 경제적, 종교적 활동과 분리될 수 없다는 그의 믿음은 예술사회학에 기여한 바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