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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왕정의 시작
·헨리7세 - 튜더왕조 시작, 절대왕조 성립
리치먼드 백작의 아들로, 헨리 6세가 죽자 모계(母系)를 통하여 랭커스터왕가의 가장으로 인정되었다. 한때 프랑스로 피했다가, 1485년 웨일스에 상륙하여 보즈워스 전투에서 리처드 3세를 패사(敗死)시켜, 장미전쟁을 종식시킴과 동시에 튜더왕조의 개조로서 즉위하였다. 치세 중에는 오랜 내란으로 혼란한 국내질서를 바로잡는 데 힘쓰고, 요크왕가의 음모를 진압하였으며, 봉건가신단(封建家臣團)을 해산시켜 귀족세력을 약화시켰다. 요크왕가의 귀족 소유 영토를 몰수함으로써 왕령지(王領地)를 증대시켜 재정을 튼튼히 하였으며, 또한 성실청재판소(星室廳裁判所)를 강화하여 질서유지를 담당하게 하는 등 왕권을 신장시켜 영국의 절대왕정의 기초를 굳혔다.
* 장미전쟁 -
랭커스터왕조는 개조(開祖) 헨리 4세가 리처드 2세로부터 왕위를 찬탈한 것이므로 3대째인 헨리 6세 때 요크공(公) 리처드가 랭커스터왕조 이상으로 왕위계승권이 있다면서 궐기하였으며, 여기에 귀족간의 싸움이 결부되어 내란이 일어났다. 이 내란의 본질은 귀족전쟁이라는 점에 있다. 장미전쟁이라는 이름은 랭커스터왕가가 붉은 장미, 요크가가 흰 장미를 각각 문장(紋章)으로 삼은 것에서 유래한 것이나, 내란 당시에는 요크가의 흰 장미만이 존재하였다.
1455년 세인트올번스전투로 시작되어 1460년 리처드가 웨이크필드에서 전사하여 장남 에드워드가 그뒤를 이었다. 1461년 에드워드는 랭커스터파(派)를 타우턴전투에서 격파하고 헨리 6세를 국외로 추방했다. 에드워드는 이 싸움 직전에 즉위하여 에드워드 4세라 칭하고, 랭커스터파 사람들을 반역죄로 몰아 영지를 몰수하고 헨리를 체포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