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비문에 나타나 있는 내용을 볼때 인명에 성을 사용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소속부명(촌명)과 이름만 쓴 것을 보면 우리 선조는 성보다 본(촌명)을 먼저 썼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의 예를 들어 추정해보면,
- 고구려는 장수왕시대(413~490)부터,
- 백제는 근초고왕시대(346~375)부터,
- 신라는 진흥왕시대(540~576)부터 성을 쓴 것으로 기록에서 추정한다.
삼국 시대의 성은
- 고구려: 고(고), 을(을), 예(예), 송(송), 목(목), 간, 주(주), 마(마), 손(손), 동(동), 채, 연(연), 명림(명임), 을지(을지)
- 백 제 : 여, 사, 연, 협, 해, 진, 국, 목, 국 등의 팔족과 왕, 장, 사마, 수미, 고이, 흑치
- 신 라 : 박, 석, 김 3성과 이, 최, 정, 손, 배, 설의 육부의 6성과 장, 비
등이있고, 왕실의 성인 고(고),여(여),김(김)을 쓴 사람이 가장많았다.
삼국사기에도 성을 쓴 사람보다는 없는 사람이 더 많았고, 주로 중국에 왕래한 사신들과 유학자와 장보고와 같이 무역을 한 사람들이 성을 사용하였으며, 일반민중은 신라 말기까지 성을 쓰지않았다.
고려시대
고려의 태조 왕건은 개국 공신들과 지방 토호세력들을 통합 관장하기 위하여 전국의 군·현 개편작업과 함께 성을 하사 하면서 우리나라 성씨의 체계가 확립되었다.
이와 같이 고려 초기부터 귀족 관료들은 거의 성을 쓰게 되었으나, 고려 문종9년(1055)에 성이없는 사람은 과거급제할 수 없다는 법령(법령)을 내린 것을 보면 이때까지도 성을 쓰지않은 사람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법령으로 우리나라의 성이 보편화되어 일반민중이 성을 쓰게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문종 이후의 사람을 시조로 하는 성씨가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