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3) 고려 전기에는 지배체제를 정비하면서 아악이 강화되었다.
: <고려사>에는 당악이 언제 들어왔는지 확실치 않으나, 다른 문헌을 상고해보건대 당악정재(唐樂呈才)를 공연하면서 거기서 부를 노래를 지었던 기록이 있다.
(4) 속악가사의 종류
① 삼국 속악을 궁중에서 공연하며 즐겼으니, 속악도 처음부터 갖추어져 있었다.(향가형식)
㉠ <정읍사>(井邑詞) : 조선시대에까지 전해져서 국문 사설이 기록
㉡ <처용가>(處容歌) : 신라 때 노래의 전승
㉢ 장연우(張延祐)의 <한송정곡>(寒松亭曲), 예종의 작품으로 비정할 수 있는 <유구곡>(維鳩曲) ▶ 민요에서도 흔히 있을 수 있는 두 줄 향가의 면모를 보인다.
㉣ <정과정곡>(鄭瓜亭曲) : 향가계통이 노래가 고려 속악으로 들어온 더 좋은 예.
② 속악으로 노래말이 한문으로 표기된 작품.
<풍입송>(風入松), <야심사>(夜深詞), <자하동>(紫霞洞)
▶ 시대변화의 추이에 다라서 속악이 구성이 달라진 모습을 알 수 있다.
③ 창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
<쌍화점>(雙花店) : 왕조의 위엄이나 상층문화로서의 품격을 지니지 않고 있으며, 음란한 내용임을 부인할 수 없다. 임금의 안녕을 송축한다고 하는 노래라도 그런 명분과는 어울리지 않는 내용을 지니고 있어서 주목된다.
▶ 이런 노래는 아무래도 고려 후기에 채택되었을 것 같다. 고려 전기에 애써 이룩한 왕조의 위엄이나 이념적인 질서가 무신란·몽고란을 겪고 나서 무너지자, 속악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변화가 일어났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