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⑶ 국내외의 정치 문서
다른 나라들과의 외교 관계에서 한문으로 된 국서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는 외교상의 용건을 전달할 뿐 아니라, 문화적 역량을 과시하는 구실까지 했다. 이러한 국서는 넉 자나 여섯 자씩 짝을 맞추는 변려문이어야 하는데 백제의 `칠지도의 명문`이나 북위에 보낸 국서, 그리고 신라의 `치당태평송`, `답설인귀서`, `걸죄표` 등에서 잘 보인다. 이러한 외교 문서의 작성자로는 신라의 강수 등이 유명하다. 그밖에 현존하는 최초의 한시인 을지문덕의 `여수장우중문시`는 반어적인 기법을 사용했다.
2. 노래의 새로운 모습
⑴ 고구려 노래
지배 체제가 정비되어 가면서 상층의 문화와 하층의 문화가 분리되었다. 상층의 문화로 `악`이 생겨났다. 시 가 무의 종합적인 공연이면서 통치 체제를 상징하고 나라의 위엄을 자랑하며, 밖으로 문화 수준을 드러내고 안으로 백성을 감복하게 하는 것으로 무악과 가악으로 구분되었다. 이는 질서 유지가 특히 중요한 구실이었으므로 예악으로 일컬어지기 일쑤였다. 자료로 남은 것은 세 편이다. `내원성`은 오랑캐가 귀순하면 머무르게 한 성으로, 이를 기념하여 지은 노래이다. `연양`은 어떤 사람이 남에게 쓰이는 바가 되어 죽기를 무릅쓰고 열심히 일하다가 자기의 신세를 나무에다 비해서 노래한 것이다. `명주`는 시련을 극복하고 사랑을 성취한 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