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2. 철학사상
박제가는 전문성을 띤 철학 논문운 본격적으로 쓰지 않았다. 그는 풍수설을 비판하며, 사람들의 생각과 사회 기풍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풍수가 아니라 사회 환경이라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놀기만 좋아하고 일하기 싫어하는 양반 사대부의 나쁜 기풍은 바르지 못한 환경 때문에 조성된 것이라고 하였다.
박제가의 사회·역사관에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역사를 물질적 재부의 생산과 과학기술 발전의 역사로 이해한 점이다. 그에 따르면 농업 생산이 저하되는 원인은 과학 기술이 낙후하고 생간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데 있다. 이렇게 되면 세계 발전의 추세에 뒤질게 불을 보듯 뻔하다. 세계의 발전 추세를 따라잡으려면 반드시 상업과 대외무역을 발전시키고 선진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생산 활동에 활용해야 하며, 이용후생에 유리한 모든 것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는 이용후생을 정치의 기본이며 도덕의 근본이라고 보았다.
생산과 소비의 관계 문제에서 그는 물질적 재부의 생산을 늘려야만 소비품을 증가시켜 농민의 생활 수준을 높일 수 있으며, 소비품 생산을 늘려야만 사회적 생산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이전 실학지들이 토지제도의 개혁에 중점을 둔 것과는 달리. 중농억상(重農抑商) 사상을 벗어나, 당시 사회 발전의 추세와 상인·중인 등 성장하느 시민 계층의 이익과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그는 절용(節用)·절검(節儉)보다 사치가 국부를 증진시킨다는 용사론(用奢論)을 주장하기까지 한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백성을 이롭고 넉넉하게 하느가 하느 데 있었다.
박제가는 인류의 역사를 물질적 재화 생산의 발전사와소비폼 생산의 발전사와소비품 생산의 발전사 그리고 문화의 발전사로 보았다. 그러나 그는 사뢰 발전의 진정한 원동력이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느 자에게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국왕과 고관대작을 계몽시켜 봉건적인 법을 개선하자는 데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