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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은 김옥균과 함께 우리 근대사의 대표적 `혁명가`요, `풍운아`로 손꼽힌다. 그러나 이 두 거목은 출신성분이나 사회적 위치가 달랐고 따라서 그들이 주도한 변혁의 과정도 달랐다. 당시의 벌열가문 안동김씨 출신으로 고위관직에 있던 김옥균은 소수의 개화파를 이끌고 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권력을 일거에 장악하려한 반면, 몰락한 시골양반 출신으로 훈장질로 겨우 끼니를 때우던 전봉준은 수많은 농민의 지지를 얻어 농민의 군대를 조직하고 끊임없는 싸움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 했다. 요즘식으로 이야기하면 보다 대중적 지지를 받은 쪽은 전봉준인 셈인데 그래서 전해지는 설화나 민요에서 전봉준은 아직도 신화처럼 숨쉬고 변혁과정도 전봉준 쪽이 보다 드라마틱하다.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서 조그맣게 앉아있는 전봉준의 눈빛이 강렬하다는 인상은 이같은 역사적 사실이 사진의 뒷면에 그림자처럼 깔려 있는 탓이다.
그런데 전봉준 없는 농민전쟁은 어금니 두어개가 빠진듯 허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씹어 볼 수는 있는 가정이다. 실제로 인물로만 친다면 같은 농민군 안에서도 전봉준 보다 김개남이 더 낫다는 설도 있다. 전봉준 없는 농민전쟁이 가능한 이유는 이 사건이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데서 연유한다. 세계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는데도 여전히 지배계급은 수탈만 일삼고 피지배계급인 농민은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저항은 필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