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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건국 직후의 토지지배관계와 역분전의 설치
전근대사회에 있어서 주업은 농업이었다. 농경이 당시의 기본적인 생산형태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 기반이 되는 토지문제는 사회질서와도 관련하여 가장 주목받는 과제가 되어 왔다.
고려시대의 토지제도는 전시과를 그 근간으로 한다. 이 제도가 처음 마련되는 것은 5대 임금인 경종 원년(976)의 일인데, 그 이전인 건국 직후에는 우선 공로가 탁월한 고관이나 호족들에게 식읍과 녹읍을 사급한 기사가 보인다. 그 중 전자의 예로는 후백제의 견훤과 신라의 경순왕 김부가 귀부하여 오자 이들에게 각각 양주와 경주를 식읍으로 삼게 한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밖에 지방의 대호족으로 신왕조에 충성을 서약해 온 경우에도 식읍이 주어졌을 듯싶지마는 구체적인 사례는 찾아지지 않는다.
이에 비하면 녹읍은 귀순한 지방호족뿐 아니라 이른바 「공경장상」이나 「권세지가」등 비교적 넓은 범위에 걸쳐 주어졌다. 호족련합정권적 형태를 띠고 있던 건국 초기에 있어 저들을 회유·무마하기 위하여 많은 녹읍이 사급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때의 사급이란 사실 본래부터 호족들이 지배하고 있던 세력 범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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