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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의 발전과 사회경제의 대외관계
1. 부여의 발전과 전개
부여는 건국 이후로 빠르게 성장하여 나갔는데 그 과정은 건국 설화에인 동명신화에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부여국은 건국 후에 빠르게 발전하여 곧 분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기원전 1세기 경에는 많은 부여인들이 제 2송화강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동남쪽을 향해 옮겨 가기도 하였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동부여(부여)의 왕위가 금와왕(金蛙王)에게 계승되고 이어서 대소(帶素)에게 전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 그러나 금와의 아들 대소가 22년 고구려에 의해 살해되고, 그 아우들과 추종자가 함께 압록곡(鴨?谷)에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대소가 죽음을 당한 이후 부여 읍락의 대부분은 고구려에 투항하여 연나부에 안치되어 락씨(絡氏)라는 성을 하사받았다. 그 이후 매우 오래도록 연나부의 동부여인들은 상대적으로 독립된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압록강과 가까운 지역에서 동부여로 표기되는 집단이 분화 발전된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 부여는 1세기 초부터 이미 중국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성장하였고 늦어도 후한 초에는 중국식의 왕호를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삼국지(三國志)』동이전(東夷傳) 부여조에는 “매우 부유하고 선조 이래 남의 나라에 패해 본 일이 없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당시 부여가 경제력과 함께 강한 군사력과 통치력을 갖춘 사회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2. 부여의 사회.경제
(1) 사회
▶ 부여는 왕과 대가(大加)들의 연맹체로서 중앙의 왕은 귀족과 관리를 거느리고, 대가들은 자신들의 종족을 기반으로 중앙 이외의 지역을 통치 하였다.
이들 통치계급 이외에 평민층으로는 호민(豪民)과 하호가 있었는데, 이 중 호민은 부유한 상층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