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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이 개척한 영토는 동북으로는 두만강 송화강 하류, 서로는 대능하, 남으로는 한강 유역에 이르는 방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확장은 당시 동아시아 국제질세를 새롭게 구축하는데 동반되어야 할 필요한 조치들이었고 광개토대왕은 그 역할을 주동적으로 담당했다. 고구려가 그 후 내부적으로 약 200여년의 전성기와 평화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것도 광개토대왕이 이러한 기틀을 마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광개토대왕은 중국의 상황 변화를 정확하게 인식한 위에 대중국 관계를 강 온 양면 정책의 입장에서 안정시켰다. 한강 유역 진출을 위해 백제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강경책을 고수했다. 그 정책은 장수왕 대에 이르러 평양 천도와 한강 유역 완전확보로 결실을 거두었다. 그러나 신라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백제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으로 신라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나 백제를 돕는 왜에 대해서는 백제와 마찬가지로 강경책을 취했다. 이는 백제를 견제할 수 있는 신라를 보호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필요성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광개토대왕의 업적은 영역의 확대라는 단순 논리로 바라보아서는 안…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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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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