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히브리서는 위로부터의 기독론,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본성, 신적존재, 선재 로고스, 우주적 개념으로 봄.
이 마지막날에 그 분이 오셨다. 옛날에는 예언자들을 통해서 이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통해서
1:3 만물을 붙드신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위치에서 신적인 사역을 하는 모습이다.
요한복음과 같이 그리스도에 대한 기독론적 고백이 신적인 스테이터스를 가지고 있다. 상당히 고양되어 있다. 역시 다른 신약성서에 저자에게서와 마찬가지로 히브리서 저자에게서도 아래로부터의 기독론도 같이 있다. 두 개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나타나 있다.
1:4 천사보다 뛰어나게 되었다. 기업으로 얻었다. 5:8 배웠다. 되었다. 칭함을 받았다. - 다 양자론적 표현이다. 그분이 이 세상에서 사시면서 시험을 당하고 유혹을 경험하고 고통을 겪는 모든 과정이 하나의 쇼가 아니고, 하나님이 괜히 와서 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똑 같은 인간으로 오셔서 그런 삶을 사시고 고난, 죽음,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대 제사장으로 칭함을 받았다. 즉 이전에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것은 항상 딜레마이다. 논리적인 사고구조를 가지고 체계화 시키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고 그러한 사실은 가능한지 그게 후대의 기독론 형성과정에서 신성과 인성을 조화시키려고 시도는 해 보았으나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예수님의 신적 기원을 표현하기 위해서 마가는 세례시 성령의 강림을, 마태와 누가는 한 걸음 더나가서 신적 기원을 탄생에서부터, 요한은 한 걸음 더 나가서 태초에, 선재 로고스로 출발함, 반면에 히브리서는 독특하게 멜기세댁으로부터 왔다고, 유대교의 제사제도의 관점에서 대제사장으로, 히브리서의 독특한 기독론이다. 제사장적 사역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출처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멜기세댁이다. 족보가 없고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은 인물이다.
베드로전서는 박해가 심했던 시기에 씌어진 것으로 이야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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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우신 주님으로, 요한은 선재로고스, 바울은 왔다 갔다, 선재 혹은 아담 기독론, 히브리서 대 제사장, 에베소서 우주적 화해자, 요한계시록 영광의 어린양 다양한 기독론적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