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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전통 중에 공자와 맹자는 바늘 가는데 실 가듯 따라 다닌다. 대성지성선사(大成至聖先師)가 나오면 곧이어 아성(亞聖) 하는 식이다. 《논어(論語)》하면 《맹자(孟子)》 하는 식이다. 그리하여 공자(孔子)가 ‘인(仁)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 하면 맹자(孟子)는 ‘의(義)를 위해 목숨을 던진다’는 식이다. 결국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주장이나 종지(宗旨)는 시종 북 치면 장구 치는 식으로 서로 장단이 잘 맞아왔던 것이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맹자(孟子)는 《시(詩)》와 《서(書)》에 근거하여 공자(孔子)의 주장을 더욱 발전시켰다」는 기록이 보인다. 근대의 중국 학자 풍우란(馮友蘭)은 공자(孔子)를 소크라테스에 비교하고 맹자(孟子)를 플라톤에 비교하기도 했다. 여하튼 공자(孔子)와 맹자(孟子)는 바늘과 실의 관계라 해도 그리 큰 잘못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공자와 맹자를 자세히 비교해 보면, 실상 서로 다른 구석이 매우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장 눈에 띠는 차이점은 이렇다. 《논어(論語)》에 보이는 공자(孔子)의 모습은 일종의 뭐랄까 유유자적(悠悠自適)함이랄까 하여간에 여유가 있고 한적한 느낌이 든다. 이에 비해 《맹자(孟子)》란 책에 보이는 맹자(孟子)의 모습은 매사에 긴장감이 넘치고 심지어는 잔뜩 독이 오른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공자(孔子)는 「군자(君子)는 무릇 으젓하고 떳떳하나 소인(小人)은 항상 걱정스러워 하고 조바심을 낸다」며 자신은 항상 으젓하고 떳떳한 유유자적한 스타일을 유지했다. 또한 제자들에게 소원 하나씩을 말해보라고 했을 때, 여러 제자가 각기 의미있는 그런 소원을 이야기했으나 공자(孔子)는 의외로 증석(曾晳)이 말한 소원을 가장 맘에 들어 했다. 증석(曾晳)은 어떤 소원을 말했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