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앞 글에서 어느정도 짐작했겠지만,내 관심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호오(好惡)의 감정이 아니다.
재확인하지만 그 글은 박완서의 묵상집을 통해 기독교인의 신앙행태와 인문학으로서의 기독교 신학,그리고 현대사 내부의 교회사적인 측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려했던 것이다.
다시 밝히자면 이런 얘기다.왜 우리 기독교는 입으로는 `기독교 토착화`를 주창하면서도 현상으로서의 기독교 행태는 그저 외로 나가고 있는가? 왜 기독교 신학은 현대사 속에 충분히 녹아들지 못한 채 서구신학의 틀에 불과한 그리스도론을 금과옥조로 섬기는 바람에 서양 신학의 최근 변화를 감지 못하고 있는가?
내 의문은 `교회에 속하는 사람들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관점을 가져온 교회가 오랜 동안 구원사와 역사,그리고 교회와 국가를 이원적으로 구분하는 바람에 현대신학이 요구해온 명제인 `교회의 세속화`에서 왜, 그리고 어떻게 멀어져왔는가 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사안이 명쾌하게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박완서의 묵상집도 범용한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신앙고백으로 떨어지고 있고,형해화된 교리문답 수준을 보이는 아쉬움을 낳았다고 본다.
고백하지만 나의 이런 견해와 의문은 `한국 현대 인문학의 한 정점`으로까지 평가되는 안병무의 민중신학에 대한 공감을 전제로 하고 있고,상당한 암시를 구하고 있다.
안병무의 말을 인용해 보겠다.
`지금까지는 한국문화와 역사,한국적인 것에 대해서 역기능적이어야 참다운 그리스도인이었고, 그런 것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것이 훌륭한 그리스도인의 표정이었다.적어도 근본주의 신학으로 무장한 서구 선교사들이 전해준 그리스도교는 그러했다.(중략)그러나 그리스 도교의 `지금` `여기서`의 신앙적인 결단이란 무시간적,무공간적인 것일 수 없다. 한국적인 것과는 이질적인 것으로서의 그리스도교가 한국문화권에 무시간적 무장소적인 보편진리로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이러한 이유에서 `한국적 그리스도인`이란 말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인 의미를 갖는다`
몇해 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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