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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에 걸친 문사 대량살륙에 뒤어이 역시 살육을 동반한 정변이 단기했다. 명종 2년 (1172)의 이의방에 의한 이고 등의 살해를 필두로 동왕 7년(1179)의 경대승에 의한 정변, 동왕 14년(1184)의 이의민의 집권과 이래 십여년간 “상도자”란 구까지 들었던 그의 두 아들과 함께 자행한 횡포 그리고 동왕 27년(1196)의 최충헌 형제에 의한 정변, 최충헌의 등장 이후의 사왕신종 광종 고종 희종의 영립과 2왕 희종 명종의 폐위 및 그의 일인독재체제를 정비하기까지 부단히 행해졌던 정적보청등이 죽림고회릐 최후의 사저가인 이인로의 말년인 고종 칠년(1220)까지의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다.
위의 정변들은 물론 무신집권층 상호간의 정투이지만 이로 인한 사회적인 불안상황의 조성과 문사들의 축첩은 또한 필실의 세다. 이와 같은 집권층의 살벌한 상쟁과 아울러 명종 사년 조립면의 반란을 위시하여 최충헌 집권기에까지 걸쳐 각지에서 분연히 일어난 반란 또는 민란들은 죽림고회가 처한 이 시대의 불안과 혼란에 더욱 가세했다.
이와 같이 무인들의 전황이 있는 한 문사들의 진도는 암담할 수 밖에 없었다.
원래 무인란은 어떤 새로운 경륜에 의한 의어가 아니라 단지 오랫동안 문신에게 눌려 지냈던 데에서 기래된 전혀 감정적이고도 보부적인 폭거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일단 집권하자 중앙의 요직을 독점하다시피 했음은 물론이지만 삼경사도부 임목으로부터 군현관역의 직임에 이르기까지의 외직조차도 모두 무인으로 등용시킴으로써 문사들에 대한 <공여>로부터의 배제를 거의 철저하게 단행하는 한편 지난날 왕실과 귀족의 사제와 전토를 점거 탈취하는 등 영주를 위한 그들의 횡포는 자성했다. 무엇보다 내외직의 무인독점에 의한 문사들에 대한 배제는 그들집권의 거의 필연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문사들에겐 실로 살육 다음의 일대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