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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엽 중국과 조선은 모두 예학사상 최고시기에 진입하였다. 중국의 예학은 선진선진 시기에 시작되어 양한양한과 위진위진 시대에 흥성하였다가 송대송대에 이르러 미약해지고 명명에 이르러 거의 끊어졌다. 청대청대에 들어와 예학은 다시 소생하였고 건륭건륭 원년원년에는 『삼례삼례』관을 개설하게 되었다. 건륭 13년 『흠정삼례의소흠정삼례의소』 178권이 완성되었다. 이를 전후로 연이어 나온 명가명가의 대저대저로는 장이기장이기의 『의례정주구두의례정주구두』17권, 이광파이광파 『삼례술주삼례술주』 69권, 서건학서건학 『독례통고독례통고』 120권, 만사대만사대 『의례상의례상』 2권, 혜사기혜사기 『예설예설』 14권, 방포방포 『주관집주주관집주』 12권, 『의례석의의례석의』 17권, 『예기석의예기석의』 46권, 강영강영 『예서강목예서강목』 86권, 진혜전진혜전 『오례통고오례통고』 262권, 손희단손희단 『예기집해예기집해』 61권, 김악김\켖 『구고록예설구고록예설』 15권 등 모두가 대단한 것들이었다. 이때에 이르러 출현한 능정감(능정감: 1755~1808)의 『예경석례예경석례』 13권과 호배휘(호배?: 1782~1849) 『의례정의의례정의』 40권은 청대 예학 성과의 이정표라고 칭할 만 하다.
조선 반도에서도 일찍이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중원의 예교가 전파되었고, 점차적으로 과거의 고시 과목에 들어가기도 하였지만 전문적인 학문으로 성립되지는 않았다. 고려 말에 『주자가례』가 도입됨에 따라 예학이 흥성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선 뒤 예학 연구자들이 배출되어 예학은 크게 융성하였는데, 권근권근, 최석정최석정, 김장생김장생, 정구정구, 송시열송시열, 윤휴윤? 등은 모두 한 시대의 빼어난 학자들이었다. 다산다산에 이르게 되면, 조선의 예학은 이미 수 백년 간의 학문적 축적이 있었으므로, 전대의 학자들을 능가하는 걸출한 명문 학자가 될 수 있었다.
정다산정다산은 이름이 용용, 초명초명은 귀농귀농, 관명관명은 약용약용…
정다산정다산은 이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