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조선왕조의 구조적 모순은 극에 달해 이제 그 붕괴가 뚜렷하게 보이게 되었다. 대외적인 서양세력의 침범이 시작되어 그에 대응하는 것이 민족적 과제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아래 동학은 수운 최제우에 의해, 영불연합군이 중국 북경을 함락시켜 서양의 침입설이 나돌던 1860년에 창시되었다. 유학이 지배이념이던 시기에 그와 다른 동학을 최제우는 창시하였던 것인데, 이것은 기존의 지배이념을 배척하였던 점에서 가히 혁명적 발상이었다.
몰락양반의 서자(庶子)출신의 최제우는 사회관습속에서 차별을 받아오며 양반체제의 모순을 몸소 뼈아프게 체험하여 양반사회의 모순을 개혁하고 당시의 국내외적 위난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기반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유교를 위시한 여러 종교와 전통적인 민간신앙들을 소화하여 재구성하면서 각종의 사회윤리를 부정하고 보다 더 본질적인 인간성회복과 서양세력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종교, 동학을 재창하게 된 것이다.
최제우는 그것이 서양에 대한 대결의식에서 나온 것임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서학의 힘이 서양의 무력을 매개수단으로 하여 중국을 멸망시킨 다음에 이어서 조선에 침입하여 조국인 조선을 멸망시키지 않을까 하고 심각한 위기의식을 절감하면서 새로운 도(道)로서의 동학을 창도하였기 때문이다.
최제우는 동학을 창도한 후 약 1년 동안 동학의 이론화작업을 추구하였으며 새로운 도로서의 동학의 이론과 형식을 정립하고 보안하는데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1861년에 들어서자 포덕문(布德文)을 지은 후 포덕을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