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영화의 장면장면에는 인간(人間)의 살기 위한 처절한, 그래서 아름답기도 한 생(生)에 대한 투쟁(鬪爭)이 나온다. 그들의 삶의 모습을 `생을 위한 투쟁`이라 표현(表現)한 것은, 그들의 생활(生活)의 대부분이 ‘먹고 살기 위한’, 말 그대로의 생존(生存)에의 욕구(慾求)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70세의 노인이 나라야마에 가야 하는 이유는 식구(食口)의 입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서이다. 척박(瘠薄)한 환경의 산간 마을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하여도, 경제적(經濟的)으로 얻을 수 있는 생산(生産)량은 제한되어 있다. 겨울이면 눈이 내려, 더 이상의 식량 생산 활동을 할 수 없는 이들에게 ‘겨우살이’는 크나큰 고통(苦痛)이다. 마치 우리의 선조(先祖)들이 겪었던 ‘보릿고개’와 비슷한 상황이다. 그러한 이들에게 같이 밥을 먹어야 하는 입을 하나라도 줄이는 것은 그들이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편(方便)이었다. 그렇게 하자면, 더 이상 노동력(勞動力)이 부족한(먹는 것 만큼 일을 해내지 못하는) 노인들이 희생(犧牲)하는 것은 자연(自然)의 원리에 순응(順應)하는 듯 하다. 이러한 논리를 이 마을에서는 하나의 상징(象徵)적인 의례(儀禮)인 ‘나라야마’라는 풍습을 통해서 이루어 내고 있다.
이러한 나라야마의 풍속(風俗)이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이 영화를 통해서는 알 수 없다. 예측해 보건대, 아마 이 마을이 생겨난 이후, 그들이 척박한 산간 자연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살기 위한 적응(適應)기제로서 자연스럽게 생겨났을 것이다. 그들에게 그러한 풍습은 자연적인 원리였고, 삶을 위한 당연한 의례였을 것이다. 이러한 풍습은 비단 노인들이 나라야마에 가야 되는 것 말고도, 다른 방향에서도 나타난다.
이 마을에서는 자식(子息)이란 오로지 ‘장남(長男)’만이 생존의 가치가 있다. 한 가족(家族)의 가장권(家長權)은 장남에게 전수(傳受)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장남…
이 마을에서는 자식(子息)이란 오로지 ‘장남(長男)’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