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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그렇게 한 동기는 분명했다. 그는 사회의 모든 계급들이 불골 숭배의 공덕을 입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탑은 불교에 대한 왕실의 지원을 상징하였다. 그것들은 특히 경치가 빼어난 곳에 건립되었다. 관리와 승려들이 동시에 참여하는 동시적인 불골봉안 의식을 통하여 그는 온 나라가 불교에 대한 국가적 지운 속에 합일되어 있다는 생각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불교의 전파를 국가정책의 수단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노력은 이전의 왕들에 의해서는 시도된 적이 없었다. 그가 행한 이러한 노력의 영향은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서도 느껴진다. 일본의 소명태자(昭明太子)는 이처럼 왕실의 후원을 드러내는 일에 크게 감명을 받았으며,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에서 온 사신들은 불골을 요청하여 본국으로 가지고 갔다.
Ⅳ. 양제와 수의 몰락
불법을 위해 공덕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아들 양광의 손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604년 양광은 제위에 올라 양제(煬帝)가 되었다. 유교적인 역사가들은 양제에 대하여 독재와 포악함, 이기심과 사치스러움의 가장 극단적인 전형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그는 불교의 추종자이며 관대한 후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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