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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1168~1241)는 아버지 대에도 벼슬을 했다고 하지만, 지방에 지반을 둔 대단치 않은 가문 출신이고, 무신란에서 피해를 받은 쪽이 아니라, 오히려 무신란이 일어났기 때문에 사회적 제약을 벗어나서 새롭게 진출할 수 있었던 세력에 속했다. 그러기에 신흥 사대부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이규보의 생애나 문학은 이점을 고려하면서 이해해야 그 역사적인 위치가 한층 더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
젊은 시절에는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그때 자기의 호를 흰구름처럼 자유분망한 의지를 지니고자 하는 뜻을 나타내는 백운(白雲)이라고 했다. 문벌귀족이 가졌던 규범적인 사고방식을 따르지 않고,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며, 민중의 삶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주체적인 문학을 이룩하자는 방향이 젊은 시절의 번민과 모색에서 이미 나타났다.
죽림고회의 무리와 더러 어울리기는 했지만, 거기에 가담하라는 제안을 받고서는 거절하는 뜻을 시로 읊었는데, 그것은 죽림칠현을 자처하는 무리가 마음속으로는 벼슬을 탐하면서 겉으로만 초탈한 듯 이 행세하는 위장술을 빈정댄 말이다.
이규보는 무신정권에서 벼슬을 하는 것을 주저해야 할 이유가 없었고, 기회가 오자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을 자랑으로 여겼으며, 최씨정권 문인들 가운데 다른 누구보다도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했다. 이점을 두고 이규보를 낮게 평하려는 견해도 있지만, 벼슬을 하여 생계를 넉넉하게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바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대로의 확고한 의식이 있어 정권에 참여하자 비로소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전환이 모색될 수 있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