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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만년에 호불로 기울어져서 각계 유신 유림의 반대를 무릅쓰고 궐내에 내불당을 짓고자 함으로써 일어난 사태에, 성균관과 사학이 합세하여 파학산거 했음을 학관이 승정원에 알렸다. 성균관 유생은 문묘에 알성 후 흩어졌는데 그들이 붙인 방에 이르되 불교가 성하면 우리들의 도덕은 쇠약하여진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으며 이를 왕에게 전달하였다. 왕은 노하여 유생들의 극간과 왕에 대한 협박, 성인을 함부로 핑계삼는 버릇을 고치기 위하여 몇 명 정도 따끔하게 처벌해야 되겠다는 의견을 내세웠으나, 도승지 이사철이 자신들의 불찰임을 아뢰고 성균사예(成均司藝) 나홍서를 불러 마땅히 생도들을 등교토록 하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