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 땅은 협소하기가 여뀌 잎과 같지만 수려하고 기이하여 가히 십육나한(十六羅漢)이 살만한 곳이다. 더구나 1에서 3을 이루고 3에서 7을 이루므로 칠성(七聖)이 살 곳으로 가장 적합하다. 여기에 근거하여 강토를 개척하여 마침내 좋은 곳을 만듦이 어떻겠느냐.”
이에 일천 오백 보 둘레의 외(外城)과 宮闕(궁궐)과 殿堂(전당)및 여러 관청의 廳舍(청사)와 무기고(武器庫), 창고를 지을 터를 마련한 뒤에 궁궐로 돌아왔다. 두루 나라 안의 장정과 공장(工匠)들을 불러모아서 그 달 20일에 성을 쌓기 시작하여 3월 10일에 공사를 끝냈다. 궁궐과 옥사(屋舍)만은 농한기를 이용하여 지으니 그 해 10월에 비로서 시작하여 갑진년(44) 2월에 완성되었다. 좋은 날을 택하여 새 궁궐로 옮겨가서 모든 정사를 다스리고 서무(庶務)도 부지런히 보살폈다. 홀연히 완하국(玩夏國) 함달왕(含達王)의 부인이 아기를 배어 달이 차므로 알을 낳으니 그 알이 변하여 사람이 되었다.
(4) 가락국기에서 허황후 관련 설화
제1장에서는「駕洛國記」에서 허왕후 도착 이전의 준비 상황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었다.
1-1) 수로왕이 九干의 처녀 중에 하나를 …
참고문헌
• 김선양, “가락국기의 문학적 연구” ,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1991
• 서경숙, “가락국기의 역사적 성격” ,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1985
• 김정국, “구지가 연구” ,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