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그렇다면, 나의 인생도 행복한 것인가?`
[홍합]을 읽고 나서 내가 던진 의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런 의문에 대해서는 그간 재고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의문을 제기할 필요도 없이 답은 이미 내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그랬던가. 눈이 신체 상단에 달려 있는 것은 이상을 향해 질주하는 인간 본성의 상징이라고. 그래서 인간은 현실에 만족을 할 수 없다고... 그 해석에 나의 무기력한 삶을 대입시키면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나는 세상에서 도태되어 가는 패잔병의 모습일 뿐이다. 이렇게 지리멸렬 사는 것이 과연 행복한 삶인가?
1년 동안 책꽂이 한편에 꽂혀 장식물 역할만하던 [홍합]을 다시 뽑아 들었던 것은 그 제목이 주는 안온함 때문이었다. 1년 전 서점에서 [홍합]을 선택했을 때도 그런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책을 뽑아들 당시 나는 인간이나 토속적인 향수가 대책 없이 그리울 만큼 원인 모를 상실감과 외로움에 허덕거리고 있었다. 소설의 내용은 기대도 상관도 없었다. `홍합`이라는 제목이 던져주는 아련한 향수. [홍합]을 마주 대하는 순간 머릿속에 구겨져 있던 흑백 사진 한 장이 꿈틀거리며 조심스럽게 펼쳐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열 살쯤이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방에 누워 울고 계셨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의 느낌이었지만, 배가 고픈데도 밥 달란 소리가 나오지 않을 만큼, 집안에 가득 내려앉은 심상치 않은 불길함은 나를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버지는 그 날 꽤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오셨다. 지치고 피곤한 표정이셨다. 아버지가 돌아 오셨는데도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안방 문을 열고 어머니의 돌아누운 모습을…
열 살쯤이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방에 누워 울고 계셨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의 느낌이었지만, 배가 고픈데도 밥 달란 소리가 나오지 않을 만큼, …
시원하고 구수한 홍합이 입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어린 가슴을 답답하게 하던 불안과 위기감이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