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긴 세월 동안 `얼굴 없는 시인`으로 떠돌다 돌아와서일까, 얼굴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1991년 체포될 때의 이글거리던 반역의 눈빛, 성난 호랑이처럼 포효하던 혁명가의 얼굴은 어디로 갔느냐? 마치 세속을 떠난 수도자처럼 평온해 보인다. 어쩌면 그렇게 얼굴이 변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정말 내 얼굴이 변하고 내가 변한 것일까? 일부 공안 검사들은 `한번 빨갱이는 영원한 빨갱이야. 간질 병자가 늘 간질하나, 결정적일 때 발작하니까 위험한거지`하면서 두고 보자고 벼른다. 또 한 쪽에서는 `박노해가 변절한 거 아니냐. 완전히 맛이 갔더라`고 수근거린다. 그러나 사람은 변화하면서 성숙하는 존재가 아닌다. 변화와 변절한 것은 다른 것이다. 맛이 가더라도 썩어서 변질된 맛과 잘 익어서 승화된 맛은 전혀 다르다. 내가 변하지 않았다고 보는 눈과 내 변화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눈. 이들은 사람과 세상을 진화, 발전하는 과정으로 보지 않고 완결된 고정체로 본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자기 관점이외에는 모두 틀렸다고 보는 절대 유일의 잣대만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서로 통한다......
그러나 진보의 본성은 `변화`이다. 세상 만물은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는 것,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것, 이 단순한 진리가 나에게는 얼마나 눈물겨운 희망이었던지.
참고문헌
1. 박노해, 노동의 새벽, 서울:풀빛, 1984.
2. 박노해, 박노해 시선. 머리띠를 묶으며, 서울:미래사, 1995.
3. 박노해, 오늘은 다르게, 서울:해냄출판사, 1999.
4. 이병훈, 노동해방의 시인 박노해를 논함, 사상문예운동, 1990.
5. 조정환, 노동의 새벽과 박노해 시의 변모를 둘러싼 쟁점과 비판,
6. 노동해방문학,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