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6) 조선 시대
조선은 고려의 전통 위에 유교 사상이 가미되어, 석곽묘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석실도 거대한 석곽 또는 석관형으로 변하였다. 화장묘가 사라지고 중국식 토광묘가 일반화되고 풍수 사상이 더욱 보편화되었다. 부장품은 백자가 주로 이용되었고, 외형은 초기에는 원형과 장방형이었고 중기 이후에는 거의 원형분으로 정형화되었다. 묘비가 일반화되어 고관대작의 묘 앞에는 신도비가 설치되었다. 또 왕능은 풍수 사상의 일산일혈(一山一穴)의 원칙에 따라 하나의 산등성에 하나의 능만을 안치했으나, 민간의 묘는 경제적 부담과 괸리의 편리성 때문에 한곳에 여러 기의 조상을 모시는 족장(族葬)의 형태가 널리 유행하였다. 조상을 숭배하고 그 무덤을 소중히 하는 의식인 유교로부터 배운 것은 다음 두가지였다. 첫째, 내 생명은 조상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므로 조상의 유택인 무덤을 잘 가꾸어 보존하여야 한다는 점. 둘째, 조상의 무덤은 효를 가르치는 산 교육장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무덤이 일찍부터 풍수사상과 결부되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비록 조상이 유명을 달리 했을지라도 그 시신을 명당에 묻어 자손과 연결된 좋은 기를 받아 발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