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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희랍의 도서관에는ꡒ영혼을 치료하는 곳ꡓ이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었다고 한다. 근자에 들어서는 문학이란, 하는 물음을 자꾸만 던지게 된다. 새삼스러울 수도 있는 그 물음 앞에 나는 매번 뒷걸음질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이승하 시인의 시를 읽고 있으면, 문학이 어떤 이에게는 영혼을 치료하는 것 일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처음 접한 시인의 시는 그의 등단작 이기도 한 화가 뭉크와 함께였다. 개인적으로 뭉크의 작품을 괴이는 고로, 아무려나 시인의 시를 접하게 된 것이었다. 말더듬이의 절규와도 같았던 그 시를 보고 한동안 입말로 중얼중얼 했던 기억이 있다. 장정일은 그의 독서일기에서 시인의 관한 기억을 말하는 과정에 자신의 사랑을 뺏아갔다며, 아직도 뭉크는 이승하에게 귀속된다고 쓴 바 있다.
장정일은 그의 첫 소설 아담이 눈 뜰 때를 통해 뭉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나는 이승하 시인의 시가 근본적으로 말더듬이의 화법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지 그가 감행한 시 형식상의 해체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인다. 다시 말해 시인이 분열된 의식으로 가족에 관해 말하고, 폭력에 관해 말할 때, 그때의 불완전한 언어가 보다 눈에 띈다는 말이다.
이것은 그가 이성적인 목소리로 고통과 폭력을 말할 때는 시가 지니는 재치는 느껴지지만 울림이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나는 시인의 시작(詩作)이 자신의 내면과, 그것과는 무관하게 확고히 존재하는 외계의 인식에서 비롯한 삶의 단면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관점에서 시인의 시를 이해하는 데에는, 이승하라는 한 사람의 삶과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가 영향을 준 것은 부인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시인 개인의 삶보다는, 실질적으로 억압받은 유년기를 보낸 그가 문학 즉, 언어의 틀이라는 갇힌 세계…
그런 관점에서 시인의 시를 이해하는 데에는, 이승하라는 한 사람의 삶과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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