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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소위 문학과 연접한 곳에 자리를 잡은 신출내기들이 다 그렇듯이 내게도 문학이란 시란 이만해야한다는 반듯한 사정권이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그 사정권 안에 진입한 문인은 몇 되지 않았으나, 고민 없이 밀어낸 문인도 드물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나는 박남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한마디로 내게 박남철은 시인이 아니었다.
그런데 참을 인자를 써가며 읽기 시작한 시집에서 낯익은 시구를 발견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걸핏하면 읊었던-그때는 그것이 시인 줄 몰랐던-ꡒ고등학교 다닐 때 늘 새침하던 어떻게든 사귀고 싶었던 포항여고 그 계집애ꡓ로 시작하는 ꡐ첫사랑ꡑ이라는 시. 그 때는 다만 자주 들어 앞의 몇 행을 외고 있었던 그 시. 처음으로 내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면, 뜯어봐서 이쁜구석 하나 없는 사람도 없지 않을까, 하는 거다. 그렇게 잘 들여다보면 그의 시어가 예상외로 세심한 사고의 과정을 거쳐서 선택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는 남의 시를 그대로 베껴 놓거나, 동음이의어를 사용하여 독자들의 고의적인 부주의함을 유발한다. 처음 이런 그의 시를 대하면, 사전이나 뒤적거려 말장난이나 일삼는 시인의 방자한 행태에 코웃음을 치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코웃음이라도 칠 수 있는 독자라도 있으면 다행이고, 나를 비롯한 대개의 사람들이 그의 화법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쯤 되면 이제 박남철 시의 본질을 따지고 들 때인 것 같다. 사실 팔십년 대 해체시의 주목할만한 두 시인에 황지우와 박남철 언급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해체시가 무어냐 하는 것도 실상 기존의 정형화된 시 형식의 파괴라는 두루뭉실한 정의를 내리면 그만…
이쯤 되면 이제 박남철 시의 본질을 따지고 들 때인 것 같다. 사실 팔십년 대 해체시의 주목할만한 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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