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설명
임나일본부의 연구사와 연구 동향, 문제점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임나일본부와기마민족
본문/내용
2. 임나일본부에 관한 연구사
임나일본부에 대한 연구사를 검토해보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임나문제를 운위하는 경우에는 전부 720년 일본에서 편찬되었다는 『일본서기』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임나문제에 대한 정의나 연구는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서기』에 보이는 야마토정권의 임나지배에 관한 기사는 그 기원과 경영과정, 그리고 멸망과 종결 등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야마토정권과 임나의 관계는 『일본서기』에 등장한 후 천여 년간 학계의 주목을 끌지 못한 채 역사 속에 묻혀 있었다. 그런데 수호번주(수호번주) 덕천광국(덕천광국)의 명에 의해 1657년에 편찬이 시작되어 1906년에 완성된 『대일본사(대일본사)』의 「임나전(임나전)」에 그것이 다시 등장함으로써 세상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임나전」에 의해서 임나문제가 일본역사의 일부로서 등장된 다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한국침략과 한일합방 속에서 임나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관정우(관정우, 간마사또모의 『임나고(임나고)』, 나가통세(나가통세, 나까미찌요)의 『조선고사고(조선고사고)』, 진전좌우길(진전좌우길, 스다 사오기찌)의 「임나강역고(임나강역고)」, 금서룡(금서룡, 이마니시류)의 「가라강역고(가라강역고)」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의 특징은 『일본서기』의 기사를 대체로 기반으로하여 임나제국의 강역·위치·연고 등의 고증을 통해서 『일본서기』에 보이는 임나관계가 사실임을 뒷받침하려고 하고 일제 강점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한 학자들이었다.
이 중에서도 진전의 연구는 『일본서기』의 대부분의 내용이 백제삼서에 기초를 하여진 윤작으로 밝혀내고 있어서 일본서기 연구에 대한 새로운 활로를 펴고 있지만 그 역시도 철저한 야마토정권은 임나지배를 숭배하던 관학파 사학자라는 것에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이후의 연구는 임나관계역사상의 재구축이 그 과제였다. 그리하여…
그 이후의 연구는 임…
참고문헌
『한국사 시민강좌』11집, 일조각, 1992.
천관우, 『加耶史硏究』, 일조각, 199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17.
부산·경남역사연구소 고대사연구부, 『시민을 위한 가야사』, 집문당, 1996.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분과, 『한국고대사산책』, 역사비평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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