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설명
베르나르두스의 생애와 활동, 사상, 저서 그리고 베르나르두스가 입회한 시토회에 대해 알아보고, 그의 역사적 위치를 살펴보았다.
베르나르두스
본문/내용
1146년 3월 21일 프랑스의 왕과 왕비가 십자군에 가담한 베즐레에서, 베르나르두스의 연설은 가장 효과적이었다. 그는 그후 프랑스의 북부지방과 플랑드르지방을 왕래하였고, 라둘프 수사의 비공식적인 행위에 자극을 받아 라인지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라둘프가 마인츠에서 야기시켜 놓았던 유대인 박해를 저지하는데 성공하였다. 그가 라인강을 따라서 여행하는 동안 수많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는데, 그가 기적 중의 기적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은 1146년 크리스마스날에 모든 정치적인 고려에도 불구하고 콘라드왕에게 십자군을 지지하도록 영향을 주는 데에 성공한 일이었다. 베르나르두스는 1148년 랭스에서 열린 대회의에 참석하였고, 그 회의에 뒤이은 질베르 드 라 포레에 대한 반대토론에서 베르나르두스가 그의 주요한 상대로 나타났다. 그러나 추기경들의 질추로 말미암아 질베르는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고 도망할 수 있었다. 이 무렵 십자군에 관한 불리한 첫 소식이 알려졌고 십자군의 완전한 패배를 알리는 통지가 뒤따랐다. 예언자적인 권위를 가지고 유리한 결과를 예언하였던 베르나르두스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만년에 그를 비통하게 하는 많은 일들을 겪어야 했다. 그가 일생동안 관련을 맺어 왔던 사람들은 죽었고 유게니우스 3세와의 관계도 때때로 마찰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육체의 쇠약과 고통은 증가하였으나 그의 정신적인 생명력은 여전히 활동적인 것이어서 그의 최후의 작품인 《De consideration》는 약해지지 않은 정신의 힘과 신선함을 드러내고 있다.
사상적으로는 정통 신앙의 열렬한 옹호자였으며, 신비주의자이기도 했던 베르나르두스는 지식을 위해 지식을 구하는 것을 이단이라고 했고 스콜라적 변증법을 배척했다. 그는 신학과 영성 생활을 다루는 여러 저서들을 남겼으며, 1153년 8월 20일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