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사람이 누구나 거역할 수 없는 운명 중에 하나가 환경이다. 집안환경. 우리 주변인물들을 잘 살펴보면 그 사람의 집안환경을 알 수 있다. 집안환경이 좋은 사람, 좋다는 것은 부모를 잘 만나 경제적 어려움 없이 편안히 자라는 경우를, 집안환경이 안 좋은 사람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어린 나이에서부터 자립해야만 하는 경우를 일반적으로 말한다. 외딴방의 작가인 신경숙은 후자에 속하는 인물이다. 16세의 나이에 공장을 다니면서 공부하는, 본인들은 싫어하는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주경야독`하는 사람들 중에 그녀 역시 한 사람이었다.
그녀를 포함한 또 다른 그녀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조그만, 소박한 희망들을 안고 상황들과 싸워나간다. 싸워나간다는 표현이 이 책의 그녀들에게, 아니 그 환경의 모든 사람들에겐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70년대 후반, 아니 80년대 중반 대대적인 노동쟁의가 있기 전까지의 우리나라의 산업현장을 어떠했는가. 우리나라 산업현장의 비참함을 보여주려는 노력을 많은 작품들을 통해서 해왔고, 노동자 자신들은 싸워왔다. 전태일도 그중 한사람이다. 노동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 전태일. 전태일이 간 후에도 우리나라의 산업현장은 별반 달리진 것이 없었다. 신경숙이 보여주듯 여전히 사용자의 횡포는 심했고, 작업량은 쉴새없이 노동자들을 혹사시킨다. 열악한 작업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 복지시설을 말하기에는 그 시절이 너무 일러서였을까.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그녀들에게도 희망은 있다. 희망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다. 산업체특별학교, 그 속에서 희망을 키워가는 그들에게 그 조그만, 소박한 희망도 분에 넘치는 것이었을까? 사용자측에선 마음에 또 다른 상처를 준다. 그 상처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계속된다. 바로 노조가입을 둘러싼 상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