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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얘기를 하자. 그레이스케일(Grayscale)이란 색감이 있다. 나 같이 색에 결함이 있는 자나 정상인이나 똑같이 평등하게 대해주는 흑백으로만 이루어지는 색감이다. 그런데 이 흑백 계열의 그레이스케일이라는 색감은 사람을 쓸쓸하게 한다.
컴퓨터의 포토샵이라는 그래픽 프로그램이 있는데 어떤 화려한 색감의, 또 아무리 힘찬 동작들도 그레이스케일로 덧씌워버리면 우울한 그리고 먼 기억 속의 과거로 변해버린다. 흰색과 검은색을 하나씩 볼 때와는 아주 다른 회색을 볼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어찌할 방도 없이 받아들이며 참아내야만 했던 과거 어느 시점의 고통스런 삶의 모습들...바로 그레이스케일이 만들어 내는 장면들이다.
오정희의 `새`를 읽으며 내내 나는 이 그레이스케일을 덧씌운 장면들을 연신 그려냈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는 어린 나이로 누구도 받아들이지도 마음으로 어루만져 주지도 않는 남매, 우일과 우미는 어른들에게 기대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으며 그들 나름대로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마음뿐이고 세상은 어른들의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공간은 어른들이 다 차지하고 있어 그 어른들을 밀치고 차지해야 하는 공간을 이 어린 두 남매는 누릴 수 없었다. 그래 그들은 이 땅에 남을 수 없었다.
이 소설의 전반적인 줄거리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표방하는 많은 서사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꽃밭을 일구던 아버지의 사업 실패, 어머니의 가출, 외할머니댁, 외할머니의 죽음, 외삼촌 집, 큰집, 그리고 화류계 여자를 데리고 나타난 아버지와의 결합, 새엄마의 가출, 아버지의 방황, 그리고 동생의 죽음과 나의 기억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