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동수 노인회장의 개인적인 노력 끝에 갖추어진 검은여의 현재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검은여에는 아직도 굴 껍질이 붙어 있어 검은여가 바다에 있던 바위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검은여 주변이 육지로 변했기 때문에 바다에 있던 바위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보다 확실한 경관이 필요해서 1989년 2월 검은여 주변으로 4m 폭으로 수로를 만들어 물 위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이게 하였다. 그리고 부석노인회 주관으로 군비 200만원, 현대건설 지원금 150만원으로 1989년 4월 27일에 유래비도 세웠다. 유래비 뒷면에 쓰여진 비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검은여의 유래
「검은여」는 부석면 송리 앞바다의 적돌강(적돌강) 가운데에 위치한 작은 돌섬이다. 신라의 고승(고승) 의상대사가 문무왕 11년에 중국 당(당)나라에서 공부를 마치고 신라로 귀국할 때 대사를 사모(사모)하던 당나라의 젊은 여인이 결혼을 애원하였으나 거절하고 배에 오르자 당녀(당녀)는 바닷물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신라에 돌아온 대사(대사)는 당녀의 혼(혼)을 위로하기 위해 문무왕 17년(677)에 당나라와 가장 가까운 현재 부석면 도비산(도비산)에 절을 창건하던 중 마…
참고문헌
박춘석, 1987, 《서산의 민속》, 지혜문화사.
부석노인회, 1992, 《부석의 이모저모》
서산문화원, 1987 《서산민속지》.
서산문화원, 1990 《전통어린 내고장》
유철인, 신행철 외 지음, 1995(1986), 〈제주사람들의 문화적 정체감〉《제주사회론》, 375~397쪽 서울: 도서출판 한울.
정은주, 1993, 〈향토축제와 ‘전통’의 현대적 의미: 강릉 단오제의 연구〉(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학위 논문)
Bianco, Carla, 1980, `Ethnicism and culturology: The cultural identity of regional and immigrant groups`, Sociologia Ruralis 20(3):151~1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