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개요
슈타우펜(Staufen) 왕조 시대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때 한 세기 이상동안 중단되었던 독일어 문학이 11세기 중엽부터 부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독일어는 古高 독일어가 아니라 中高 독일어로 쓰였다.
이 시기 초기의 문학 작품에는 극단적인 금욕주의와 교권주의로 인해 광신적인 신앙 생활과 현실 도피적인 경향이 나타났다. 그러나 점차 교회 지도자들의 관심은 교권뿐만이 아니라 세속적 지배권까지 미쳤다. 따라서 이들은 세속 봉건 세력과 대립관계에 있었으며, 그 대립은 점차 심화되어 갔다. 이러한 대립의 본보기는 독일 황제 하인리히 4세와 교황 그레고르 7세(Gregor Ⅶ)의 대립이다. `카놋사(Canossa)의 굴욕(1077)`은 황제가 교황에게 굴복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 시기의 문학은 황제와 교황의 투쟁 및 이들의 이데올로기 사이의 투쟁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었다.
처음에는 친교황적인 금욕적 문학이 압도하다가 후에는 세속적 기사 문학이 앞서게 되었다. 세속적 기사문학은 봉건세력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2) 슈타우펜 왕조 시대의 문학
11세기에 접어들면서 기사 계급은 중요한 사회 계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기사 계급이 대두되던 초기에는 폭력·비교양적 전쟁 수행이 기사들의 도덕과 이상과 일치하였다. 그러나 12세기에 이르러 보다 높은 문화 수준에 있었던 프랑스의 모범적 기사도가 독일에 전래되어 독일 기사들은 교양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제 1차 십자군 원정으로 이슬람의 기사도도 독일 기사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유럽의 기사들 또한 서로 밀접하게 접촉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기사 계급은 문학에도 참여하게 되었고 이로써 궁정·기사 문학이 대두되었다. 이 시기의 문학은 교회에 대항하여 봉건 체제의 유지와 전파에 기여하였다.
궁정 문학 초기의 궁정 서사시 문학은 환상적인 모험을 주제로 삼았고, 그 외에도 십자군 원정 등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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