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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공내전(國共內戰)의 전개
일본이 패망한 1945년 8월 이후, 국민당과 공산당은 내전에 곧바로 돌입하게 된다. 물론 모택동과 장개석이 참여하는 중경교섭(中京交涉)이 열리기는 하였지만, 그 것과는 별도로 각처에서 양당간의 전투는 산발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1946년 1월 국-공 양당간의 정전협정이 미국의 중재로 이루어지긴 하였으나, 국민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7월 공산당에 대한 동북 지역 총공세에 나서게 된다. 이후 1947년 초까지는 어느정도 국민당의 우세로 전투가 진행되었으나, 수많은 군사적-정치적 요인들로 인해 서서히 전세는 바뀌기 시작하여 1947년 5월에는 공산당의 전면적인 반격이 진행되고, 48년 9월 제남-평진등에서의 국민당 주력군의 패배로 사실상 공산당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49년 초에 장개석과 국민당 지도부는 패배를 인정, 재빨리 대만으로 후퇴하게 되고, 1949년 10월 1일, 공산당이 이끄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이 이루어진다.
4. 국민당 패배의 원인
1) 군사적 측면
첫째로 국민당은 전략적으로 허술했다. 국민당군은 한 곳에 군사력을 집중시키기보다는, 보다 넓은 지역에 군사력을 분산시켜 배치하는 경향이 있었…
참고문헌
- “중국현대사”, 신승하, 대명출판사, 1997
- “중국 근현대사의 재조명”, 서울대학교동양사학연구실, 1999
- “장개석은 왜 패하였는가”, 로이드.E.이스트만 저, 민두기 역, 지식산업사.
- 두산 세계 엔사이버 대백과사전 “국공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