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한국 신학을 위한 인식론을 위한 신론
신학이란 하나님에 대한 얘기이다. 그 하나님은 사람과 관계없이 있지 않고 사람을 위하기로 한 분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위함을 받는 존재다. 기독교 신학의 전통에 다르면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서 있지만 사람을 위해 있다. 그래서 신학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인 인간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하이데거는 진리 이해를 인간의 존재 방식으로 말했지만, 신학에서 볼 때 인간 이해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다. 인간 이해가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라는 얘기는 하나님이 사람을 이해하면서 존재한다는 말도 되지만, 하나님이 인간 쪽에 쏠림으로서만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포이에르바하가 말한 것과 다른 각도에서 신학은 인간학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에 쏠린 인간을 전제로 <이해>를 인식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의 문제로 풀었지만, 신학에서 볼 때 이해는 사람에게 쏠린 하나님 때문에 인간론 또는 인식론의 문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서양에서 발전한 존재론은 기독교의 신을 표현하는 틀로서 상당한 설득력이 있지만, 기독교의 신은 존재론에 흡수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거리 두기에서 생기는 방법론의 가능성이 생기고, 그 때문에 한국 신학을 말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신 하나님이 그런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사랑이신 하나님은 인간의 원초적 귀속을 말하지만 꼭 존재론을 요청하지는 않는다. 사람에게 쏠린 하나님은 결국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다. 사람을 위하되, 대하면서 위한다. 그것이 사랑의 의미다. 베풀기만 하지 않고 대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대하기 때문에 사람의 영향을 입는다. 그리고 사람의 고통을 같이 겪는다. 영향을 입어서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신 하나님이 그런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사랑이신 하나님은 인간의 원초적 귀속을 말하지만 꼭 존재론을 요청하지는 않는다. 사람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