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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는 인종 23년(1145)에 고려 귀족문화를 정리하고 강렬한 국가의식을 표출하는 가운데 중국의 력사관을 수용하면서도 독자성과 융통성을 강조하여 현실긍정과 합리성이 두드러진 사서이다.
그런데 일연이 삼국유사전편을 통해 강조하는 신이(神異)는 민족 자주성과 문화의 우위성을 내세우고자 한 것이었다. 이는 외세의 압제에 대항하여 그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의 원천이 자기 전통이라는 강한 확신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이 사관이 아닌 일개 승려의 신분이었고, 그의 활동 범위가 주로 영남지방 일원이었다는 제약 때문에 불교 중심 내지 신라 중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북방계통의 기사가 소홀해졌으며, 간혹 인용 전적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을뿐더러, 잘못 전해지는 사적을 그대로 모아서 수록한 것도 눈에 띄나, 그것은 「삼국유사」라는 책명이 말해 주듯이 일사유문적(逸事遺聞的)인 기록인 탓에 불가피한 일이었다 하겠으며, 당시의 민속·고어휘(古語彙)·성씨록(姓氏錄)·지명 기원·사상·신앙 및 일화 등을 대부분 금석 및 고적으로부터의 인용과 견문에 의하여 집대성해 놓은 우리 나라 고대 정치·사회·문화 생활의 유영으로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일대 서사시라 할 수 있겠다.
「삼국유사」가 지니는 사학사적 위치는 대세에 역행하는 복고적인 것으로 규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한국의 현대사학에서 지니는 의의까지가 덜하다는 뜻은 아니다. 아마도 「삼국유사」가 현대에서 지니는 의의는 다음의 두 가지 점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삼국유사」의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것이다. 특히 전거를 밝혀 주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전거를 제시한 인용문은 일연이 이를 자의로 변경하고 있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러므로 「삼국사기」와는 달리 소박한 표현들…
첫째는 「삼국유사」의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것이다. 특히 전거를 밝혀 주었다는 것은 중요한 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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