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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균의 사상과 그에 대한 나의 생각
많은 사람들은 김옥균을 개화사상가라기보다는 친일파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김옥균이 조국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위하여 일시 일본을 이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의 여야정객들과 교제를 가졌다 하여 그것 때문에 친일파라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그의 사상의 정당한 면모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용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끝까지 자주적 정신으로 조국의 독립과 융성을 위하여 투쟁해왔고, 그로 인해 일본정부와 일본반동들의 박해를 받았으며 힘들고 고된 일생을 살아간 인물이다.
또한 그의 사상은 끓어 넘치는 애국주의로 가득했으며, 조국의 미래와 인민의 앞길을 위한 근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애국주의는 부르주아적 것이었고, 진정한 인민적인 것으로는 될 수 없었다. 그가 염원한 강하고 융성한 조국은 부르주아의 조국이었으며, 그는 이것을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자기가 이상한 사회에 장차 도래할 사회적 모순을 알지 못하였다. `이것은 그의 부르주아적 애국주의가 가진 불가피한 제한성이었다.`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옥균의 선진적 철학과 진보적 사회 정치적 견해는 적지 않은 역사적 제한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 사상사 위에서 귀중한 유산으로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라나는 우리 나라 초기 부르주아의 사상적 대표자이며, 낡은 봉건사상에 대하여 처음으로 체계적 투쟁의 봉화를 든 역사적 인물이다. 그의 귀중한 사상적 유산은 그 후 부르조아 민족 운동자들에게 거대한 영향을 주었다. 나는 이런 김옥균이라는 인물을 친일파라고 낙인을 찍기보다는 우리 나라 개화사상의 선구자로써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싶고,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1. 홍종도,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역사비평사, 1990
2. 김문용, 이흥용 역, 「한국철학사상사」, 예문서원,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