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⑵ 문화론
루소는 `『학문예술론』의 최초의 장면`을 수 차례 언급한 바 있다. 때는 1749년, 여름이 다시 돌아온 것처럼 덥던 10월초, 루소는 그해 봄부터 무신론 혐의로 옥에 구금되어있던 친구 디드로를 만나기 위해서 파리에서 벵센느(Vincennes)까지 『메르퀴르 드 프랑스·Mercure de France』를 읽으면서 걷고 있었다. 그 잡지에서 그는 디종 아카데미가 `학문과 예술의 부흥은 품성을 순화하는 데 공헌하였는가`를 묻는 현상공모과제를 발견하였다. 이 주제는 일종의 계시로서 그를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켜버렸고 이는 그의 일생에 전환점으로 각인이 되었다. 이 주제에 답하여 루소의 처음 작품이 만들어졌으며 게다가 이 논문은 당선되어서 루소를 단번에 유명하게 만들었다. 루소는 그의 저작 전체를 이 처음 논문에 담겨있는 최초 직관이 확장된 결과로 간주하였는데, 거의 종교적인 계시로 그에게 다가온 이 최초의 진리는 과연 무엇인가? 어떤 새로운 관점을 루소가 발견한 것인가?
디종 아카데미는 루소에게 거의 사십이 가깝도록 개인적으로 안고 살았던 본질적인 모순을 새삼 정형화하여 사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준 셈이다. 어린 루소는 아버지와 함께 읽었던 『플루타크영웅전』 등을 통해 고대 희랍인들의 덕과 위대함에 감명을 받았으며 또 16세에 떠나온 고향 제네바는 그에게 칼뱅교도적인 공화정치의 이상(理想)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공화주의와 평등주의를 동경하고 있었던 루소가 그 당시 사회에 대하여 취하는 입장은 우선 비판적이다. 더욱이 동정과 자선에 의존해야만 하는 어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