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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국주의와 선교인가?>
제국주의와 선교사업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제국주의는 팽창과 확장의 정치학이며 선교사업은 전세계의 복음화를 목표로 한다. 유럽의 본격적인 팽창이랄 수 있는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복기부터 기독교(특히 로마 카톨릭)는 제국의 형성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지리상의 발견이 시작된 이래, 현재 중남미 아메리카 대륙의 거의 전부(잉카, 아즈텍 문명의 영역을 포함)와 아프리카 해안지방, 희망봉과 케냐 지역, 오르무츠 해협, 인도의 고아(Goa)와 캘리컷, 수마트라 섬, 말라카 제도, 필리핀과 마카오에 이르기 까지 이 두 나라의 영역으로 귀속된다.
기독교와 유럽의 팽창은 11세기 무렵의 십자군 전쟁으로부터 시작된다. 십자군 운동은 (전쟁이 가져다 준 무수히 많은 효과는 차치하더라도) 기독교 신앙으로 뭉쳐진 ‘하나의 유럽’ 이라는 인식을 유럽인들에게 심어주었다.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라는 두 나라는 철저한 카톨릭 국가로 중세 이베리아 반도에 진출하여 있었던 이슬람 세력으로부터의 ‘영토 재정복’ 이라는 특수한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 오랫동안 계속된 이교도와의 투쟁으로 이 지역 사람들은 깊은 믿음만큼이나 이교도에 대한 반감을 가진 상태였다. 더구나 1453년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면서 유럽 기독교 문명 전체에 대한 위기 의식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당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복사업은 교황이 공인한 것이었다. (토르데실랴스 조약 1494)
홉스봄이 말한 본격적인 ‘제국의 시대’ 에 들어와서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문명전파의 사명감과 복음 전파의 기독교적 의무는 항상 함께 가는 것이었으며 분리되지 않았다. 18,19세기에 들어와서도 으레 식민지에는 선교사가 있었으며, 선교사가 먼저 였는지 식민지 건설이 먼저였는지…
홉스봄이 말한 본격적인 ‘제국의 시대’ 에 들어와서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문명전파의 사명감과 복음 전파의…
참고문헌
「문화와 제국주의」 에드워드 사이드, 김성곤▪정정호 옮김, 창, 1995
「오리엔탈리즘」에드워드 사이드, 교보문고, 1993
「근대교회사」 유스토 L. 곤잘레스, 은성, 1991
「선교신학」 데이비드 J. 보쉬, 두란노서원, 1989
「카톨릭교회사 상/하」 김병도, 카톨릭 출판사, 1981
「선교사 열전」루스 터커,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아프리카-500만년의 역사와 문화」롤랜드 올리버, 여강출판사
「스페인제국사 1469-1716」 존 H. 엘리엇, 김원중 옮김, 까치
「마테오리치-기억의 궁전」
「서방에서 온 현자-마테오 리치의 생애와 중국선교」
「통치론」J. Locke
「(예수회 신부)세스뼤데스??r\n「서양문명의 역사II, III」E.M 번즈 R. 러너 S.미첨, 박상익 옮김, 소나무
「A note of the Portuguese missionary methods in the east:16~18C」 C.B. Boxer
www.historychannel.com (about “the kingdom of Congo”, “Jules Ferry”, “Imperialism”)
동영상 자료는 블랙로브(Black Robe), 미션(Mission), 황비홍2, 포카혼타스(애니메이션)의 일부분을 캡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