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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의 장자인 소현세자가 인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둘째아들인 효종이 왕통을 잇게 되었다. 북벌을 추진하던 효종이 재위 10년만에 승하하고 그의 아들인 현종이 즉위하자 서인과 남인사이에는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 조씨가 효종을 위하여 몇 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격렬한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것이 1차 예송인 기해예송(1659)이다.
중국 주나라 이후의 여러 제도는 주자가례와 더불어, 우리 나라에 전래되어 계속 시행되어 왔고 그 규정에 따르면 부모상에는 삼년복을 입고 장자상에도 그 부모는 차남과 구별하여 삼년복을 입도록 되어 있었다. 이러한 기해예송이 문제가 된 것은 효종이 가통으로 볼 때 차자가 되고 왕통으로 보면, 적자가 되므로, 어느 쪽으로 보는가에 따라서 상복을 입는 기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때 서인의 송시열과 송준길은 기년복(1년)을, 남인의 윤휴와 허목은 삼년복을 주장하였고 이러한 양파간의 논쟁이 오래도록 계속되게 되었던 것이다.
효종이 승하하자 당시 이조판서인 송시열과 우참찬 송준길은 효종이 비록 왕통을 이었지만 가통으로 보면 장자가 아닌 차자이므로 조대비의 상복은 기년(1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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